이름: 최정윤
포지션: 약사(Pharmacist)
파견 국가: 아시아, 중동, 유럽 등
활동 지역: 광주(한국)에서 원격근무
활동 기간: 2023년 2월 – 2023년 8월
활동가님은 이미 약사로서 전문 지식을 살려 세계 이곳저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여러 번 하셨지만(*최정윤 활동가의 남수단 활동기 참고) 이번 직무와 근무 형태는 확실히 좀 특수했다고 할 수 있죠.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렇죠. 이번 포지션은 약사로서 지역적으로 상당히 넓은 범위에 속해 있는 프로젝트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아예 모바일 실행가(Mobile Implementation Officer)라는 말이 붙는, 원거리 근무 자리였거든요. 원칙적으로는 근무 기간 중에 담당하는 현장 일부를 방문해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예를 들어 이라크에 갈 일이 생겼을 때는 그게 한국 정부가 지정한 여행 금지국이라 저로서는 방문할 수 없었죠.
이라크 시누니(Sinuni) 지역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병원 신생아·소아과 병동 ©Hassan Kamal Al-Deen/MSF
또한 사실은 제가 지원했던 자리가 아니고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이 자리에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요건에 맞는 구인이 어렵다 보니까 기존에 인력풀에 들어있던 저에게 긴박하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어서, 일종의 땜빵 역할이었다고도 볼 수 있죠. 제가 살고 있는 한국 광주에 근거지를 두고서 아시아(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와 중동(예멘 제외), 유럽의 그리스와 발칸 북부까지 크게 담당하면서 현지 프로젝트들에서 약사로서 일하는 동료들을 지원하는 역할이었고요.
어떻게 보면 현지에서 근무 중인 동료들을 상대로 일종의 온라인 고객 서비스 센터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약국을 건축하고 있는데 지금 여기 습도가 너무 높다. 이걸 어떻게 관리하면서 안전하게 약품을 옮길 수 있을까?”라는 문의가 오면 기술적인 지원을 먼저 한 뒤, 본부 기술 자문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본부와 현장 사이에서 중재 역할도 하고요.
국경없는의사회라고 하면 현장에서 직접 근무하는 활동가의 모습을 상상하기 쉬운데 색다릅니다. 각국 현장을 여럿 다녀오신 베테랑이시고 현장 근무가 오히려 익숙하실 텐데, 이번에 한국에서 원거리 근무를 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걸 더 좋아하긴 하죠. 이번엔 특수한 상황이라 한국에서 재택 근무를 한 건데, 내 집에 있으면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한국에 기반을 두고 넓은 지역을 상대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죠. 원래 저는 직속 상사와 한국시간 9-5시 사이 시간에 일하기로 했었지만, 이메일이든 전화든 현장의 문의는 현지 시간에 맞춰서 오게 되거든요. 지역이 광범위해서 오전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 이메일이 옵니다. 담당하는 국가가 이슬람 국가가 많아서 주말에도 일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서 잘 때까지 붙들고 있고, 스마트폰에도 연결을 해 두고, 자정에도 전화가 올 수 있다고 봐야죠. 이런 원거리 근무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낮에는 개인 약속이 있으면 나갈 수도 있는 거지만, 24시간 내내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사실은 이번 재택 근무 기간 중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도 있었습니다.
2021년 방글라데시 근무 당시 국제 여성의 날 행사에서 동료와 함께한 최정윤 활동가 ©최정윤/국경없는의사회
과연 시차가 나는 해외 현장들과 소통하는 원거리 근무 장단점이 뚜렷하군요. 그럼 이번 직무 특성에서 느끼신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이번 활동은 아무래도 본부와 현장 사이에 위치한 역할이다 보니 여러 가지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긴 합니다. 저희 약사들은 아무래도 매일의 업무도 있지만 계속해서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공부하는 것이거든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구축해 둔 의약품 관련 가이드라인들을 읽고 공부하고,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연구나 옹호 활동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다른 분야 이야기들도 더 자주 들을 수 있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지역 보건의료 분야 전체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본부와 현장 사이에서 상황 보고와 소통을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을 파악하게 되죠. 예를 들어 디프테리아 항독소를 구매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지금 서아프리카쪽에 디프테리아가 창궐하고 있으니 국경없는의사회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다든가 하는 방안을 생각해낼 수 있고요.
또 의도하진 않았지만 매니지먼트랄까 정치적 역량이랄까를 기를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라고도 느꼈습니다. 모든 일터가 그렇겠지만 인사 문제가 그렇습니다. 프로젝트 운영과 기술 인력이 따로 있고 지역적 인원도 다양하다 보니 개별적인 입장차가 지속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람직하지 않은 알력들이 있을 수도 있고요. ‘상사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상담도 해 주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들의 경우 본부에서 제공하는 심리사회적 지원 방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국경없는의사회도 직원들에게는 일터니까요.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제가 2011년 첫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이번에 제가 지원한 현장 중 방글라데시 같은 곳은, 제가 그곳에 나가서 일한 적도 두 번이나 있는데다가 마침 지금 거기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저의 이전 동료거든요. 시리아의 경우도 이전에 제가 베이루트에 기반을 두고 지원한 적이 있는 현장이기도 하고 아직도 일부 그때 동료들이 근무하고 있기도 해서 익숙했고요. 이런 식으로 그동안 제가 여기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보람있는 일이 효율적으로 더 잘 진행될 수 있으면 더 기쁘죠.
게다가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일이 개인적으로도 적성에 맞아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약국에서 일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경제적 이익을 무시하고 운영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면 정말이지 순수하게 오직 환자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산상 이유로 무언가 활동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가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요. 그런 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자유로운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우리가 어차피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건 사실인데, 그걸 전제로 택할 수 있는 직업 중에서는 저는 경제적 요소보다는 내가 흥미와 보람을 느낀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걸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12년 남수단 마반 활동 당시 약품 창고에서 동료와 함께한 최정윤 활동가 ©최정윤/국경없는의사회
다른 예비 활동가나 후원자분들께 남기고 싶으신 말씀은요?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아무래도 ‘내가 쓰는 돈이 남의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인다’는 데서 뿌듯함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고, 저도 늘 그런 점을 생각하며 일합니다.
한편 인간에게는 남을 돕고 싶다는 욕구가 있죠. 본인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분들, ‘그런 식으로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마시고 ‘그래, 한 번 경험해 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한 번 지원해 보세요. 열정이 있을 때 한 번 해 보는 일에 후회는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도 일종의 여행입니다. 물론 여기서 여행만 좋아해서는 안 되고 여행하면서 사람들도 돕고 싶고 다른 나라 친구들도 만나 보고 싶고 교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