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하면 대부분 구명 치료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팀의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국경없는의사회의 영향은 의료 구호 활동에 국한되지 않아 때로 그 이상의 영역에서도 상당한 일이 진행된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펼치고 있는, 의외지만 필수적인 활동 영역 중 하나는 폐수, 특히 배설물 슬러지 처리다. 비록 향기로운 작업은 아닐지 몰라도,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당 작업은 하수 흡입 트럭으로 수거한 폐기물을 액체와 고체로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고체 폐기물은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고, 액체는 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외부로 배출됩니다. 우리는 고체든 액체든 폐기물이 환경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것을 처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습니다. 특히 전염병 환자로부터 발생한 폐기물을 다룰 때 더욱 조심하려고 하죠.”_사라 미첼(Sarah Mitchell) / 국경없는의사회 식수위생 전문가
세계 최대 난민캠프가 위치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Cox’s Bazar)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원 병원 중 한 곳에서 배설물 슬러지 처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시설은 브라이턴 대학교(University of Brighton) 소속 제임스 엡돈(James Ebdon) 교수 및 디오고 다 실바(Diogo Da Silva) 박사, 국경없는의사회, 방글라데시 소재 국제 개발 단체인 브락(BRAC)이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다. 프로젝트 연구진은 수산화칼슘(Ca(OH)2)을 사용하여 대량의 배설물을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비상 상황에 특히 유용할 수 있다. 수산화칼슘은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전통적인 폐수 처리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질병 발병 때처럼 표준 방식에 따른 폐수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폐기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대안법이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내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배설물 슬러지 처리 시설. 2024년 1월. ©Mohammad Hossein/MSF
수산화칼슘을 사용하는 데에는 특정한 어려움이 따르는데, 주로 유해 미생물의 효과적 중화를 위해 정확한 양을 파악하는 것이 까다롭다.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폐기물이 충분히 살균되지 않아 콜레라와 같은 질병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너무 많은 양을 사용하면 처리 비용이 커지고 처리된 폐기물을 중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화학 물질이 필요하게 된다.
각기 다른 비율로 섞인 수산화칼슘과 슬러지 혼합물 표본이 담겨 있는 통. 2024년 1월. ©Mohammad Hossein/MSF
수산화칼슘은 공급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는 수산화칼슘의 품질을 신속하게 평가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일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_디오고 다 실바
디오고 다 실바 박사와 연구원들이 수산화칼슘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2024년 1월. ©Mohammad Hossein/MSF
또 다른 어려움은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등 폐기물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비상 상황의 압박 가운데 자원이 제한적인 지역에서 이러한 평가를 수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방법 대비 바이러스를 5-6배 빠르게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이는 적시에 결정을 내리고 처리 과정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_제임스 엡돈
제임스 엡돈 교수가 슬러지 내 바이러스 검사에 사용할 배양 접시 두 개를 들고 있다. 2024년 1월. ©Mohammad Hossein/MSF
비상 상황 시 수산화칼슘 사용에 관한 연구는 2010년 아이티 지진 이후 브라이턴 대학교 소속 휴 테일러(Huw Taylor) 교수와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장 프랑수아 페셀레(Jean-Francois Fesselet)에 의해 시작되었다. 해당 연구는 2014-2016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 때 계속 진행되었으며, 현재는 방글라데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상 상황 및 자원이 제한적인 환경에서 콜레라를 비롯한 수인성 질병의 위협은 끊임없는 걱정거리다. 병원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팀이 노력하는 동안, 폐수관리팀은 향후 수인성 질병 유행 예방을 위한 기술 향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