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황선미 |
1. 첫 활동을 다녀오셨는데요! 나이지리아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있는 본부에서 수송행정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나이지리아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현장 활동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죠. 저는 그중에서도 파리 운영센터(Operation Centre Paris)가 관할하는 세 개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주로 현장 활동가의 출입국과 비자를 위한 이민국과의 커뮤니케이션, 항공편과 숙소 예약, 코로나19 감염 관리를 위한 행정적 절차와 기타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2. 국경없는의사회는 나이지리아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나요?
나이지리아에서는 여러 운영센터의 프로젝트가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파리 운영센터가 관할하는 프로젝트는 세 개였는데요, 첫 번째는 마이두구리(Maiduguri)라는 지역에서 소아병동을 운영하는 프로젝트입니다. 80병상 규모의 병원인데, 여기는 말라리아 아동 환자가 많아요. 말라리아 피크 시즌인 4-9월에는 병상을 200개까지 늘리기도 해요. 그때는 활동가의 수도 두 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자훈(Jahun)에서는 해당 지역병원의 산모병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로 산부인과 수술이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로 국경없는의사회의 산과 누공(VVF) 프로젝트가 처음 도입된 곳이기도 합니다. 카치나 (Katsina)라는 지역에서는 최근 긴급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니제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인데 영양실조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니제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이 지역에서부터 국경을 넘어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가 많아 해당 지역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긴급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올해부터는 정기 프로젝트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저는 주로 본부에서 일했지만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구호활동 현장과 수도를 오가는 항공편이 코로나로 인해 잠정 중단되었다가 작년 9월부터 재개되었는데요, 새로운 이동 수단의 도입으로 숙소 예약, 차량 지원 등 여러 행정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해당 업무의 효율성 개선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 활동을 실제로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어요. 개선점을 분석해 보고한 후에는 실제로 반영이 되어 업무 효율이 올라가서 큰 보람도 있었고요!
3. 현장에서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우선 아침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사용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인∙아웃을 체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정확한 인원을 파악해서 식사를 준비해주는 요리사에게 전달하고요.
그다음엔 오늘의 픽업 스케쥴을 확인∙조율하고, 각 활동가의 비자와 관련된 사항을 업데이트하고 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죠. 코로나19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무실에 확진자가 여러 명 발생하면서 업무가 마비된 적도 있었고, 오기로 한 활동가가 확진이 되어 갑자기 못 오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죠. 이런 경우에는 모든 이동 스케쥴을 변경하고 그에 따라 전임 활동가의 활동 기간도 조정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왜 ‘유연성’을 강조하는지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요. (웃음)
4.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나이지리아는 연방 공화국으로 각 주마다 주정부가 따로 있었는데요, 또한 이민국도 각 주마다 따로 있었습니다. 때문에 구호활동가의 비자문제로 각 주의 이민국과 개별적으로 소통해야 했는데, 각 주마다 요구하는 바가 달라 업무를 조율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평생 처음 정전을 경험해보기도 했어요. (웃음) 얼마 지나지 않아 잦은 정전에 익숙해졌죠. 뜨거운 물이 안 나와서 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씻기도 했고, 수도가 막혀 화장실을 못 쓴 적도 있어요. 저는 나이지리아가 추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막이 가까워서 밤에는 정말 춥더라고요.
문화적 차이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슬람 문화권이라 정해진 기도 시간을 피해서 연락해야 한다거나, 생선요리를 먹는데 포크와 나이프 없이 손으로 먹어야 해서 놀란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하며 배워가는 것이 현장 활동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5.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업무 특성상 현장 활동가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사실상 모든 활동가가 나이지리아 활동의 처음과 끝을 저와 함께했다고 할 수 있죠.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가가 있는데, 아이보리코스트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 카드리(Kadri)에요. 입국 절차에 차질이 많아 제가 어렵게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입국해 자훈으로 파견이 됐어요. 이후 제가 자훈을 방문하게 됐을 때 정말 반가워하면서 자훈 프로젝트 구석구석을 저에게 소개해줬어요. 덕분에 수술장에도 들어가 보고, 수술팀과 사진도 찍었답니다.
저와 업무를 함께 하던 나이지리아 현지 직원 멀시(Mercy)도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동안 틈틈이 엑셀 교육을 해줬는데요, 직원의 역량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제가 떠날 즈음에는 제가 있던 포지션에 지원해서 합격이 됐어요. 합격 소식을 듣고 저를 안아 들어 올릴 정도로 기뻐하고 고마워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뭉클했답니다.
6.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에서 인사 담당자로 근무하다 현장 활동가로 파견됐는데요. 국경없는의사회에 입사하기 전에는 현장에 이런 포지션이 있는지 몰랐어요. 현장에서는 의사, 간호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현장의 의료지원 활동을 뒷받침하는 행정가나 인사∙재무 관리자, 물류 관리자 등도 필요합니다. 제가 가진 전문성과 역량으로 현장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보람이 됐습니다.
그리고 자훈 프로젝트 같은 경우,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지역의 유일한 구호단체에요. 산부인과 수술이 가능한 곳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에게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죠. 현장에 있다 보니 국경없는의사회가 실제로 가장 멀고, 가장 험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이 큰 자부심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죠.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현장 활동을 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