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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우크라이나: 쿠라호베 출신 피난민 대상 지원 제공

2024.12.03

우크라이나 동부 파블로흐라드(Pavlohrad)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의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닥터 올렉산드르 혼타리예프(Dr. Oleksandr Hontariev)가 약 상자를 세며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자원봉사자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말한다. 

“부상자가 있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닥터 혼타리예프는 새 의료용 장갑을 끼고 급히 밖으로 나간다.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는 현재 지역사회 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이제 근처 도네츠크(Donetsk) 지역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을 위한 경유 센터로 전환되었다. 센터 밖에는 여러 대의 대형 버스가 도착했으며, 각 버스에는 ‘대피’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버스에는 쿠라호베(Kurakhove)에서 온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이들은 비교적 안전한 파블로흐라드까지 4시간 넘게 걸리는 여정을 막 마친 참이다. 

 

쿠라호베 지역에서 대피한 사람들을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Dnipropetrovsk) 지역의 파블로흐라드 소재 경유 센터로 이송하는 버스에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다.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한 노년의 여성이 휠체어에 앉아 있고 옆에는 그녀의 남편이 있다. 작게 긁힌 흉터로 뒤덮인 그녀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른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기 위해 몸을 기울여 귓속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그녀는 “제 형제가 잔해 밑에 있어요”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닥터 혼타리예프는 그녀의 팔에 난 상처를 응급 처치한 뒤, 다른 환자들에게 옮겨간다. 차량 안에는 부상을 입은 두 부자(父子)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의 부친은 허리와 정강이에 화상과 파편상을 입었습니다. 나흘 전에 부상을 입었는데 이제서야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이런 화상은 뜨거운 금속이 몸에 닿았을 때만 발생합니다. 잔해가 그의 옷을 태우고 허리에 부상을 입혔죠._닥터 혼타리예프 

파블로흐라드 경유 센터 밖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사가 팔에 부상을 입은 환자에게 초기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4-5일 전 지뢰와 폭발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종종 마주한다. 지속적인 폭격으로 대피가 지연되면서, 사람들이 부상 직후 구명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파블로흐라드 센터에서 치료한 환자 중 25%는 자택을 강타한 폭발로 부상을 입은 경우였다. 

닥터 혼타리예프는 새로 도착한 부상자들의 상처 치료를 마무리한다. 그때 구급차가 도착하고, 의료진이 부상자들을 계속 치료하는 동안 자원봉사자들은 사람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대피 

지역사회 센터의 옛 강당에는 객석 줄에 놓여 있던 의자들이 모두 치워져 있다. 강당 안에는 무대 위를 포함해 수십 개의 침대가 줄지어 있고 대부분이 사용 중이다. 어둑한 강당에는 구석구석에 놓인 적외선 히터만이 밝게 빛나고 있다. 몇몇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고 있지만, 높은 천장을 가진 이 넓은 방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둑한 강당에서 적외선 히터만이 밝게 빛나고 있다.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파블로흐라드의 이 경유 센터에서는 도네츠크 지역 출신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이나 해외로 이동하기 전 며칠 동안 머문다. 많은 이들이 쿠라호베와 그 인근 마을에서 왔다. 러시아군의 지속적인 공세로 전선이 이동하고 생활 여건이 악화되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한다. 마을 상점, 약국, 병원은 문을 닫은 상태다. 하지만 끊임없는 폭격으로 인해 대피조차 극도로 어렵다.

 

도네츠크 출신 피난민들이 파블로흐라드 경유 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83세의 옐리자베타(Yelyzaveta)는 경유 센터에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녀는 쿠라호베 근처의 다흐네(Dachne) 마을에서 왔다. 그녀의 집이 불타면서 모든 서류와 돈도 함께 소실되었다. 

옐리자베타는 끊임없는 포격 속에서 주의를 돌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웃과 함께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포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녔어요. 그때 전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여기 앉아 있는 거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당의 낙엽을 쓸러 갔어요.”_옐리자베타 

곧이어 그녀의 자택 근처에서 폭발이 발생해 불이 나기 시작했다. 옐리자베타와 그녀의 아들은 타오르는 자택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집에 불이 나서 다시 들어갈 수 없었어요. 이웃집들은 폭격으로 두동강이 났고 우리집은 불에 탔죠.”_옐리자베타

아들이 대피를 거부해 옐리자베타는 혼자 경유 센터로 왔다. 그녀는 곧 이곳을 떠나 우크라이나 중부 폴타바(Poltava)에 있는 친척들에게 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쿠라호베 근처 다흐네 마을에서 최근 경유 센터에 도착한  83세 옐리자베타.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의료 지원 

옐리자베타는 해당 센터 내 이동진료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에게 혈압과 혈당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 의사와 임상심리사들은 매주 이곳에서 근무하며 하루 최대 5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우선 이곳에는 고령자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기저 질환이나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가 흔합니다. 이들은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을 앓고 있죠. 포격이 발생하는 오랜 시간 동안 지하실에 머물렀던 탓에 호흡기 질환으로 우리를 찾는 경우도 많아요. 또한 경미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도 종종 이곳으로 이송됩니다.”_닥터 혼타리예프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혼타리예프가 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2024년 11월. ©Yuliia Trofimova/MSF 

 

닥터 혼타리예프가 기억에 각인된 한 환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한 남성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집 지하실로 뛰어들어갔고, 대피할 수 있을 때까지 2주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지하실에 있던 통조림 야채만 먹고 지냈어요. 그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는 양측 폐렴에 걸린 상태였죠.”_닥터 혼타리예프 

심리적 지원 

한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아들이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진료를 마친 후,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 팀의 임상심리사 닥터 비올리에타 코주호프스카(Dr. Violieta Kozhukhovska)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가왔다. 그들은 경유 센터에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 함께 앉았다. 

그는 여형제가 있지만 연락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집에서 폭발이 일어나 휴대폰이 불에 타버렸고,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찾아보라고 권했습니다.”_닥터 코주호프스카 

닥터 코주호프스카에 따르면 대피한 환자 대다수가 현재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이 단계에서 임상심리사의 역할은 응급 지원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즉,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죠. 다시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_닥터 코주호프스카 

경유 센터에 도착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해당 센터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다. 봉쇄된 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추운 지하실에서 제한된 식량으로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재 이곳에서 따뜻하게 지내며 갓 지은 밥을 먹고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축복이죠.”_닥터 코주호프스카 

파블로흐라드의 경유 센터는 2024년 8월, 전선이 포크로우스크(Pokrovsk)에 가까워지면서 운영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도주의 구호 단체들이 해당 센터에서 도네츠크 지역 출신 피난민들을 수용하며 법률•의료•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 팀은 매주 해당 센터를 방문하며 국경없는의사회 의사와 임상심리사들을 통해 환자들에게 진료를 제공하고 필요한 약을 지원하고 있다.